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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이야기 25.08.19

by 밤탕 2025. 8. 24.

조예은 작가님의 책은 기괴하고 섬뜩하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지독한 매력이 있다. 치즈 이야기 라는 제목과 예전 톰과제리를 봤을 때 제리가 먹고 있던 치즈의 단면을 붙여놓은 것 같은 표지를 보고 도무지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에는 2022년 부터 작가님이 쓰셨던 7개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집으로 세 번째 이야기는 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에서 만났던 이야기라 반가웠다. 

치즈 이야기, 보증금 돌려받기,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 반쪽 머리의 천사, 소라는 영원히, 두번째 해연, 안락의 섬 이라는 각각의 제목을 가진 이야기 중에서 나는 몇 가지만 감상을 남겨보려고 한다.

 

[치즈 이야기]

표제작인 치즈 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린시절 꿨던 꿈 이야기를 하며 시작된다. 부모님이 치즈로 변했고, 마녀는 치즈로 변한 부모님을 넣은 양파 수프를 끓인다. 꿈 속에서 억지로 그 수프를 맛보았는데 너무나도 맛있었던 악몽이었고, 그 꿈을 계기로 그 수프 맛을 찾기 위해 요리를 배우게 된다. 어렸던 주인공은 엄마와 양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주로 방에 갇혀 편의점 음식 과자 음료수로 끼니를 떼우고 요강 하나에 배설하며 지냈다. 어느 날 엄마와 양아버지가 다투고난 후 캐리어 끄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후로 일주일 후 경찰에 의해 주인공이 발견된다. 

 

주인공은 요리를 배우며 고급 치즈를 여럿 맛 보았지만 꿈에서의 그 맛에는 도달하지 못 하며 지내왔다. 어느날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엄마가 병든 채 꼼짝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공은 자신이 갇혔던 방 안에 엄마를 모셔두며 자신이 어린 날 겪은 것 처럼 엄마를 방치한다. 그리고 병든 엄마에게서 나는 악취를 맡고 꿈에서 먹었던 치즈를 떠올린다. 

[이건 제가 지금껏 먹어본 블루치즈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에요. 미슐랭 식당을 운영하는 프랑스 출신 셰프가 손수 만든 치즈도 이 맛과 비교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겁니다.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맛. 바로 꿈속의 그 맛입니다.]

 

마지막 문단에는 [어떤가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인가요, 웃기는 이야기인가요?] 라는 질문이 적혀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 인 것 같다. 방치되고 학대된 아이의 상처가 썩어 치즈처럼 완벽하게 숙성되어버렸다. 주인공이 말했던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맛은 주인공이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했다.

 

[보증금 돌려받기]

표제작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보증금 돌려받기는 상상을 끌어오지 않아도 충분히 피부로 와닿는 현실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생하는 사건들이 뉴스에 종종 나오는 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사회 초년생의 시절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집을 뺀 기억이 있어서 속이 쓰라렸다. 주인공은 볕이 들지 않는 집을 떠나 조금 좁더라도 해가 드는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충분한 기한을 두고 이사를 통지하고 보증금을 반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집주인은 돈이 없기 때문에 새 계약자가 와야만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다며 뻔뻔하게 나온다. 

 

겨우겨우 새 계약자가 나타났고 다음날이면 잔금을 치르고 드디어 이사를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계약은 무산된다. 주인공의 새로운 집 계약도 무산될 판에 빌라 앞에서 집주인이 사고가 난다. 주인공은 조용히 집주인의 은행 어플로 들어가 보증금을 돌려 받는다. 인터넷에 보증금 이라는 단어만 쳐도 보증금 안 주는 집주인 대응 방법, 보증금 반환 소송 의뢰, 임차등기명령 신청 등의 관련 검색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의식주를 보장 받지 못 하는 삶이란 정말이지 공포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로 여력이 되지 않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집주인도 있겠지만 이야기 속의 집주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금 시원한 결말이었을지도. 

 

[두번째 해연]

두번째 해연은 기괴하지만 슬펐다. 왜 두번째 인가 하면 첫번째 해연은 죽었고, 그녀의 기억을 토대로 새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백연은 그런 해연을 사물로 볼 뿐 자식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며 백연은 점점 시들어가고 우주 여행을 갈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지만 치매는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 서글펐다. 해연과 백연은 우주 여행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백연의 기억 속에 있는 우주 연구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다가 사고가 발생하여 그들은 버려진 행성에 불시착 하게 된다. 

 

[하필 떨어져도 이런 곳에 떨어지다니. 해연은 은하 크루즈선이 반파되었을 때 그대로 사망하는 것과, 고장 난 비상용 캡슐을 타고 멸망한 행성에 불시착하는 것 중 무엇이 더 불행인지를 계산해 보았다.] 백연은 그 행성에 예전에 탐사를 온 적이 있었고 그들은 가지고 있는 비상 식량을 나누며 탈출을 위해 애쓴다. 마지막에 한 사람만이 귀환할 수 있을 때 백연은 행성에 남고 해연을 보낸다. 해연은 백연과의 기억을 가지고 생존하게 된다. 결국에는 만들어진 딸이었지만 백연 또한 해연을 딸로 여겼음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단편을 모은 소설집 보다는 통으로 한 가지 이야기가 담긴 장편소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조예은 작가님 글에는 그 장편을 넘어서 여러가지 양가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괴로우면서 즐겁다. 행복한 시간이었다.